지문사냥꾼 그리고 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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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이적을 알게 되면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가수가 쓴 책이라는 선입견이 조금은 있었다. 음악에 관한 책도 아니고, 그냥 판타지적인 소설이라니... 그래도 이적에 대한 관심으로 이 책을 빌려보게 되었고, 곧 나는 이 몽상적인 픽션 속에 빠져들게 되었다. 초반부 부터 등장하는 삽화는 마치 중세 시대와도 같은 몽환적인 이미지를 나타내어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잘 살려주었다. 12편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말 그대로 몽상적 이야기였다. 첫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부터 나는 작가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음혈인간>, 일반적으로 흡혈귀를 생각하면 무엇을 연상할까? 대부분 야생적이고 잔인한 그런 전형적인 흡혈귀 상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음혈인간은 우리 중 어느 인간에든 존재할 수 있다. 여느 인간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복장과 인상을 갖추고 사회생활을 한다. 다만 혈액은 비밀의 클럽 바에서나 공급받거나 따로 구입한다는, 그런 신선한 아이디어는 나를 약간 놀라게 했다.


 <제불찰 씨 이야기>.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다. 인간이 어느 날부터 점점 작아진다는 게 가능할까? 적어도 이 단편 속에서는 그랬다. 남들로부터 소외된 제불찰 씨는 어느날 몸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남의 귀를 후벼 파는 독특한 직업을 가진 그는 결국에는 귀 속으로 직접 들어가 귀지를 파게 되는 상황에 이른다. 그는 귀 속에서 그 귀를 가진 인간의 심리 상태가 형상화된, 마치 영화 속 장면과도 같은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이런 몽상적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은 이야기랄까. 


 정말 말도 안되는, 그러나 어떤 면에선 진지한 여러 단편들을 통해서 나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마치 꿈을 꾸듯이, 나는 책을 읽는 몇시간 동안 그림과 글자 속에 빠져들었고 동화되었던 것 같다. 묘사나 비유 등 스토리를 전개해가는 서술 필체도 정말 일품이었다. 다만 메인 작품인 <지문사냥꾼>은 생각보다 그리 기억에 남지 않았던 내용인 것 같고, 몇몇 이야기들의 내용이 너무 직설적이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었으며, 넘치는 능청스러움과 기괴함을 넘나드는 그만의 상상력을 교감할 수 있어 좋았다. 역시 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탈렌트는 말 그대로 재주도 참 많다. 음악, 글쓰기, 운동, 표현력 등등 여러 면에서... 가수 이적, 그를 내가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어느 날 '왼손잡이'란 노래를 우연히 접하게 되면서였던 것 같다. 사회의 소외된 계층을 대변해주는, 꽤 오래된 노래인데 나에겐 왠지 너무 감명이 깊었다. 그렇게 그룹 패닉을 알게 되었고, 이적과 김진표를 알게 되었다. 그 중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보이스, 실험적이고 타협하지 않는 작가정신에다 서울대 사회학과라는 타이틀까지(;)... 이런 여러가지에 마음이 들어 적 군에게 빠지게 되었다.


 이적은 대중적으로 그리 유명하지는 않다. 그건 그의 반사회적인 작가 정신 때문일까. 그러나 계란으로 바위치려는, 언제나 왼손잡이들의 지지자인 그는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팬들에게 행복을 주고 있다. 笛, 피리 적. 피리 부는 사나이이고 싶다는 이적. 언제나 그렇게 남아주었으면 좋겠고 그렇게 대중에게 멋지게 피리를 불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