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사형 제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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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책과 영화 이야기 

 내가 이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된 건 공지영 작가의 책을 통해서였다. '행복한 시간'이라는 책의 제목은 사형제도에 관한 이야기라는 책 설명과는 완전히 대조되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호기심에 책을 집어들었다.

 매주 목요일 면회시간이 바로 유정과 윤수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삶의 벼랑 끝에 몰려있던 한 범죄자가 짧은 시간이나마 인간적으로 웃을 수 있어서, 그것을 지켜본 나 자신마저 행복할 수 있었다. 마지막 사형되는 장면, 하나의 인간에 불과했던 윤수는 그렇게 세상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울려퍼지는 애국가.. 정말 돌이킬 수 없었을까. 이 작품은 여러가지 상황을 제시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영화는 그 특성상 책에 비해 빠른 스토리 진행과 생략을 통해 전개된다. 그래서 더 깔끔하고 여운이 남기도 한다. 영화 또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만큼 감동적이고 의미가 있었고 책을 읽고 나서 보니 더 좋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들만의 행복한 시간이 더 상세하게 서술되어 생각해 볼 기회가 많았던 책이 더 감명깊지 않았나 싶다.


 


 사형제도란 존립되어야 할까?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사형제도 지지자였다. 법을 따르는 수많은 선량한 시민들은 극소수 흉악한 범죄자들에 의해 피해 받아야만 했고 그 범죄자들을 처벌할 가장 강력한 수단은 사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뒤 나는 그것에 대해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살인에 대한 처벌은 꼭 다시 살인이라는 복수의 연속을 통해서만 행해져야 할까? 사형이란 제도도 엄밀히 말하면 인간의 생명권을 침탈하는 행위인데, 어째서 살인은 잔인한 짓이고 사형은 존귀한 제도로 미화되어야만 하는가.  

 사회에서 악의 축, 범죄자들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나는 성선설, 성악설을 둘 다 믿지 않는다. 그런 관점에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모두 비슷비슷하다고 본다.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불우한 환경에서 찌들어온 이들, 할렘가의 흉악범들.. 이런 환경에서 의지로 이겨내기란 성인(聖人)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선택권조차 없었던 이들, 그들에게 진정으로 뉘우칠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범죄자가 범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사회에 책임이 있다.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보살핌의 책임을 이탈한 사회는 손가락질만 해대기에 바쁘다. 알고 보면 정말로 악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결국은 그들도 불쌍한 과거가 있는 하나의 인간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결국 그들이 사형수이든 작가이든 어린 아이이든 판사이든, 인간에게는 누구나 공통된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며 실은, 다정한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한다는 것, 그 이외의 것은 모두가 분노로 뒤틀린 소음에 불과하다는 것, 그게 진짜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