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 해병
Movie

 영화는 당시 여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쟁 영화의 리얼리티가 상당하다. 실제를 방불케 하는 사격과 폭발 장면들이 처음부터 쏟아져 시선을 압도하고, 다양한 쇼트들이 전쟁 상황의 긴박감을 전해주었다. 실탄과 실제 군 병력을 동원했기에 가능했던 1960년대의 액션과 스펙타클은 분명 오늘날에도 본받을 점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돋보이는 지점은 전쟁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휴머니즘이 부각된다는 것이다. 전쟁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실감할 수 있는 전투 장면은 영화의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전쟁 상황에서 벌어지는 사람들 간에 이야기와 군인들의 생활상을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전쟁 중에 구출된 소녀인 영희의 순수한 시선과 나레이션으로 전개되는 영화의 중반부는 전쟁 상황의 무거움을 다소 완화시켜준다.

 

 어린 아이의 시선에서 군인들을 바라본다면 전쟁을 왜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래서 영희는 군인들에게 싸우지 말라고 계속 외친다. 전쟁 상황에서도 상급자에게 숨기면서 소녀를 보호해주는 것, 군인 오빠들에게 싸우러가지 말라고 외치는 것, 전쟁에 나간 군인들에게 편지와 선물을 하는 것은 모두 인간적인 감정들이다. 영희가 자기감정에 솔직한 존재라면 군인들은 자기감정에 따르지 못하고 상급자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존재다. 전쟁에 익숙해지고 피폐해진 군인들에게 영희의 시선은 하나의 가능성으로 느껴질 것이다.

 

 군인들이 들른 클럽에서 한국군을 받아주지 않자 물건을 집어 던지고 기물을 파손하는 장면이 나온다. 군인들의 역할은 민간인들을 폭력으로부터 지키는 일인데 오히려 폭력을 휘두르는 주체가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이렇듯 군인이 가진 폭력성을 완화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영희라는 소녀다. 군인의 폭력성과 영희의 순수함이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대상이 인간적인 방식으로 어울리고 닮아간다는 것. 구봉서의 댄스나 익살스런 유머 또한 전쟁이라는 진지한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장면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친근한 방식으로 전쟁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다른 전쟁 영화들이 긴장감과 무게감을 유지해 나간다면, 이 영화는 순수함이나 희극성 같은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로 전쟁이라는 상황에 웃음을 만들어준다.

 

 다른 한편으로, 전반부의 희극성은 후반부의 비극적이고 무력한 결말을 극대화시켜준다. 영화에는 다양한 별명을 가진 군인들이 나온다. 앞서 그들은 집단이 아니라 개개인으로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관객과 친해지고 정들었던 인물들이 마지막 전투 장면에서 군대라는 집단의 일원으로서 이름도 모르게 죽어가는 모습은 더욱 마음 아프게 느껴졌다. 특히 항상 웃기는 표정과 재치 있는 언변으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던 구봉서가 슬픈 표정을 지으며 죽을 때 비로소 전쟁의 아픔과 무게가 심각하게 다가왔다.

 

 가볍게 볼 수 있었던 군인들의 에피소드와 후반부 중공군과의 전쟁의 대비로 인해 극대화되는 것은 인물들의 삶이 실탄 한 발로 사라져버린다는 허무함이 아닐까. 오랜 시간 쌓아왔던 삶의 무게를 전쟁이란 참 가볍게 만들고, 인간의 존엄성이 아무 것도 아니게 되는 것에 허무감을 느꼈다. 전쟁의 대립 구도, 반공적 요소들보다는 군인들 자체의 서사에 집중한 결과 군인들의 입장이 되어 전쟁을 바라보게 해주었다.

 

 마지막 전투에서 분대장은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 죽은 척을 하기도 하고 호 안에서 끈질기게 버틴다. 그들에게 남겨진 임무는 전쟁의 승리가 아닌 그들의 생존과 무사귀환이다. 영화에서 하고 싶은 말은 마지막 분대장 장동휘의 대사를 통해서 드러낸다. "전쟁은 반드시 필요한가". 군인들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하지만, 이 전쟁에서 남은 것은 수많은 분대원들의 죽음, 파괴와 상처뿐이다.

 

 군 복무 시절 정신교육을 하면서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이 필요하며, 그러기에 강력한 전투력을 길러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지만,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을 품은 적이 있다. 무엇을 얻어내기 위해 대화와 협상을 사용할 수 있고 폭력과 전쟁을 동원할 수도 있다. 우리는, 국가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싸우는 것일까. 전쟁의 폭력은 평화를 위한 당연하고 불가피한 것일까. 국가적으로 권력과 이익, 그들이 말하는 평화를 얻어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전쟁에는 수많은 삶이 있으며 반드시 희생이 뒤따른다.

 

 마지막 전쟁에 시체가 된 전우들을 바라보는 장동휘의 시점화면은 전쟁이 남긴 잔인하고 참혹한 실상을 보여준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다른 전쟁 영화들과 같은,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한 거룩한 결전이나 영웅담이 아니다. 고작 한 소대로 버티려 했지만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그저 두 명의 해병의 패잔병 같은 처량한 뒷모습만을 남기며 카메라는 시체들과 함께 돌아오지 않는 그곳에 남겨진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되어버린 전우들을 보면서 나는 알 수 없는 공허감에 잠겼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전쟁 앞에서 인간애와 순수함은 모두 사라지고 무엇도 얻을 수도, 남을 수도 없. 영화는 전쟁으로 인해 가려져버린 많은 인간적이고 소중한 것들에 대해 인식하고 떠올려보게 한다.

 

한국고전영화 바로보기 링크: youtu.be/8rrBUUWRlwc

'Mov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보들의 행진  (0) 2021.04.15
칠수와 만수  (0) 2020.02.29
순수로의 시간여행, 박하사탕  (0) 2019.12.29
어느 여름의 기록  (0) 2019.07.17
라라랜드를 보고  (0) 2016.12.21